M-1947 & JANGJIN RESERVOIR BA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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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전투와 M-1947 파카에 관한 이야기





안녕하세요 에스피오나지입니다. 11월, 제법 쌀쌀해진 날씨 탓에 많은 분들의 복장이 단단해 진 것을 접하며 슬슬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기입니다. 저희 에스피오나지 역시 2018 AW 시즌, 마지막 헤비아우터 딜리버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 마지막 딜리버리 제품군 중 Chesty M-1947 Parka와 해당 제품의 배경이 되는 장진호 전투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Image from donmooreswartales.com
M-26 Tank of the 1st Marine Division


장진호 전투는 올해로부터 68년전. 6.25전쟁이 발발한 뒤 약 반년이 지날 때 쯤인 11월 27일부터 (미해병대가 전투 지역을 완전히 벗어난) 12월 11일까지 함경남도 장진군, 개마고원 위를 흐르는 인공호수인 장진호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입니다. 한국 전쟁사 뿐만 아니라 세계 전쟁사에서도 중요한 전투로 이야기 되는 장진호 전투는 2차 세계대전의 모스크바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3대 동계 전투로 알려져있습니다.

허나 전장의 환경을 고려해 보았을 때 장진호 전투는 앞선 두 전투에 비하여 더욱 열악환 환경 속에서 치러진 전투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해당 기간 내 평균 영하 30도를 유지하였고, 전투가 막바지로 치닫던 11월 24일의 최저 온도는 영하 37.5도로 기록되어 있는 최악의 환경을 배경으로 한 전투입니다. 특히 허허벌판에서 맞게되는, 만주에서 불어오는 시속 30km을 넘나드는 북서풍은 체감온도를 기하급수적으로 내려가게 했습니다.



Image from PBS 'American Experience Series'
장진호의 시작점인 하갈우리와 동쪽의 후동리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북한의 임시 수도였던 강계를 점령하기 위해 (강계 바로 아래 위치한) 장진호를 기준으로 서부는 8군, 동부는 미 해병 스미스 소장이 속한 10군단이 위치하여 북진중에 있었습니다. 당시 연합군은 인천 상륙작전 성공 이후 북한군과의 전투에서 지속된 승리를 통해, 빠른 북진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연합군 사령부는 크리스마스 이전, 압록강까지 진출하여 북한을 완전히 정복할 계획을 세웁니다.



Image from reddit.com
전투 당시 항복했던 중공군의 모습

허나 당시 미국 대통령을 포함하여 일부는, 중공군의 참전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지우지 않았으며, 실제 당시 미정보기관은 만주지역에 중공군이 소집해 있다는 정보를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몇 번의 크고 작은 중공군과의 전투가 북진 중에 있었지만, 이러한 사실들은 연합군 사령부에 의해 뭉개집니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1년 전, 지독했던 2차 국공내전을 승리로 이끈 후, 공산정권을 수립하였으며, 여전히 한반도를 통해 발발할 수 있는 미국과의 전쟁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습니다. 공군 편제도 없을 뿐 더러 대부분 농민 출신 기반에 군대라며 중국을 무시했던 미군의 당시 평가와 달리 마오쩌둥은 착실히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중공군은 빠른 속도로 북진하던, 호기롭게 여유를 부리는 연합군을 장진호 깊숙히 유인한 다음 포위할 작전을 세웁니다. 12만여명이 이미 장진호의 험준한 산등성이를 따라 장악을 한 상황, 이를 상대했던 병력은 스미스 소장이 이끄는 미 해병1사단이 포함된 연합군 3만명.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와 제1해병사단의 올리버 스미스 소장



11월 27일, 어둠이 드리우고, 나팔과 꽹가리와 같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조명탄이 터졌고 수많은 중공군이 연합군을 향해 돌진해 옵니다. 장진호의 서쪽에 위치해있던 - 제 10군단에 비해 빠른 속도로 무리한 전진을 계속했던 - 미 8군은 중공군에 크게 패하여 이미 후퇴 중이였습니다. 동쪽의 10군단이 맞이한 상황도 열악하였습니다. 낮에는 시도 때도 없이 총알을 퍼붓고, 꼭두새벽에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치 귀신처럼 쏟아져 내려 왔다는 중공군을 상대한 미군에 또 다른 적은 바로 추위였습니다.





Image from ospreypublishing.com

위에서 말씀 드린바와 같이 극심히 낮은 기온으로 인해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그로 인한 대부분의 병사는 배탈과 설사를 겪었었고, 여름부터 치러온 전쟁으로 인해 일부 병사에 경우 제대로 된 방한복 없이 전투를 치루고 있었습니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동상으로 인해 검게 변하는 것은 기본이였고, 그나마 당시 지급했던, 무릎까지 올라오는 전체가 고무로 이루어진 방한화는 내부의 땀을 배출하지 못하여 방한화와 함께 발이 통째로 얼게 되어 벗겨지지 않아 방한화와 함께 발가락을 잘라낸 병사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소총 역시 제대로 작동할리 만무하였고, 기관총에 경우 얼지 않게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사격을 해줘야 했습니다. 배터리 역시 낮은 기온으로 인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였고, 이로 인해 제대로 된 포격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받더라도 아군이 위치해 있는 근접 지역으로의 오폭으로 인한 피해도 많았습니다. 동사(凍死)를 피하기 위해 병사들이 찾아낸 방법은 방탄 헬멧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였습니다. 방탄 헬멧에서 깊은 잠에 들 경우 옆으로 쓰려져 자동으로 잠에 깰 수 밖에 없었습니다.




Image from wearethemighty.com

이러한 지리멸렬한 전투를 이어나가던 중 11월 30일 아침. 맥아더 사령관의 심복인 알몬드 소장이 장진호의 하갈우리로 날아가 스미스 장군을 만납니다. 여기서 알몬드는 스미스 소장에게 주요 작전 지휘관을 대동하여 비행기를 통해 탈출을 권하지만 스미스는 거부하였고, 마지막까지 남아 모든 병력을 철수시키기로 결정합니다.



Image from wearethemighty.com

당시 스미스 소장이 남긴 명언이 전해집니다. "후퇴가 아니다. 우리는 뒤로 전진한다."

공중지원, 포병과의 협력, 사장자의 운반, 군수물자의 운반 등등 전쟁에서 철수작전은 이 모든 것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 어려운 작전 중 하나입니다. 더군다나 장진호의 진입로와 퇴로는 하나였고, 마오쩌둥의 중동군은 제 1해병사단을 전멸시켜 미국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해 더욱 더 기세를 올립니다.



Image from usmclife.com

위급한 사상자와 주요 군수품은 하갈우리 지역에 제작해 놓았던 비행장(장진호의 비행장은 당시 스미스 소장에 의해 전투가 시작되기 전, 전술적 판단으로 건설된 것으로 얼마 안되는 기술병들에 의해 단기간에 제작되어 조악하였지만 후퇴 작전 당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을 통해 운송을 하였고, 남은 1만여명의 병사와 사장자를 이끌고 12월 1일 드디어 철수작전이 시작됩니다.

퇴각로인 화총령 협곡의 다리가 중공군의 폭발로 끊기는 등 여러 악조건이 있었지만 미해병 1사단은 사상자와 난민을 이끌고 퇴각 작전에 성공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익숙한 흥남철수가 바로 이 장진호 전투 퇴각 작전의 마지막 종착점입니다.




1950년 12월 13일, 함흥에 묻힌 해병 제 1사단 전사자들

장진호 전투는 연합군의 후퇴로 인해 중공군의 승리로 보일 수 있으며 일부 미 언론에서도 비극적인 전쟁과 잊혀진 전쟁으로 그리는 경우가 있으나, 이 전투가 불러온 이후의 전쟁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소 2배 이상 되었던 중공군을 상대로 연합군이 안겨준 큰 피해로 인해, 중공군의 주요 병력이였던 9병단(최초 편제 12만명)은 전사 2만여명, 부상 10만여명이 발생합니다. 말 그대로 괴멸적 타격을 입은 9병단은 그대로 후방에 남아 재편성을 통해 부대를 추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다음해인 1951년에 있었던 중공군의 잇따른 주요 공세 작전에서 9병단은 빠지게 됩니다. 만약 추후 공세에서 9병단이 정상적으로 전투에 참가하였다면, 현재 한반도의 상황은 어찌되었을지 가늠하기가 어려운 부분입니다.



Veterans Expeditionary Media "Chosin : Baptized by Fire"


미 버지니아주 콴티코 국립해병대박물관 內 장진호전투기념비

미군은 추후 미 해군의 타이콘데로가급 이지스 순양함 CG-65의 이름을 초신(Chosin)으로 지으며 장진호 전투를 기념합니다. '초신'은 장진(長津)을 일본식 독음으로 읽은 것으로, 당시 일본어 지도를 통해 지형을 확인할 수 밖에 없었기에, 한동안 초신으로 많이 불리었지만 현재는 미국내에서도 장진(JANGJIN)으로도 병기되고 있습니다. 이후 서적 '브레이크아웃(1999)', 다큐멘터리 '어메리칸 익스피리언스 : 장진호' 등을 통해 장진호 전투는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매해 'Chosin Few'(장진호 전투 생존자 모임)라는 미해병대 참전용사 모임을 통해 기리고 있습니다. 또 최근 대한민국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길에, 미국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콴티코 국립 해병대 박물관 내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첫 방문지로 택하여 헌화한 바 있습니다.





장진호 전투에 대해 살펴보셨고, 이제는 초점을 당시 미군의 복장으로 맞추어보겠습니다. 당시 이미지 자료를 통해 볼수 있는, 대부분의 병사들이 착용하고 있는 오버 코트 파카. 이 파카는 미군에서 한대기후 지역의 병사를 보호하기 위해 제작한 기본 아이템으로 후드가 달려있고, 몸 전체를 감싸는 긴 기장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세계 대전 이전에는 미군은 보통 당시대에 널리 사용했던 소재인 양털과 가죽을 이용해 보온복을 제작했습니다.



The Big Picture TV-172 "US and Chinese, Korean War Winter Uniforms"(1951)

그러나 전쟁을 치루며 대량생산이 필요하게 되면서 - 더불어 새로운 기술의 발전으로 - 새로운 형태의 보온복 체계를 구축합니다. 이너에는 울로 이루어진 언더웨어와 스웨터, 셔츠 등을 다양하게 겹쳐 입게 되었고, 두툼한 파일 원단으로 이루어진 이너 라이닝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이미 1941년부터 캐나다 軍을 통해 알려지게 된 라이너는 ECWCS의 레이어 시스템의 시작점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1942년 테스트를 통해 파일원단의 라이너가 퍼와 쉬어링 내피에 비해 가볍고 동일 상온에서의 보온성도 비슷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렇게 되면서 알파카와 모헤어가 내부 라이너의 주된 소재로 활용됩니다.





OVERCOAT PARKA TYPE WITH PILE LINER, Pattern Date July 21, 1947

M-1947 오버코트 파카(이하 M-47)는 미육군의 마운틴 파카를 베이스로 조금 더 활용성 있게 개발한 제품으로, 허리의 패스너인 재치밸트와 버튼을 함께 활용하여 이중으로 여밀 수 있게 한 것과, 보온성을 위해 체스트 포켓이 위치한 것이 큰 특징입니다. M-47 벨트의 경우 야전에서는 파카위에 탄띠를 착용해야 했기에 보통분리 후 착용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에스피오나지가 소유하고 있는 오리지널 제품은 후기 M-1947 제품으로 초기 형태와 달리 후드 내에 라이너까지 함께 탈착할 수 있는 형태입니다. 이 제품 이후 전쟁을 통한 실전 경험과, 개발을 통해 M-48과 M-51로 이어지게 됩니다. 한국전 초기 일부 병사에게는 M-48이 보급되기도 하였고, M-51은 51년 6월부터 적용되어 한국전에는 보급되지 않았습니다.



로버트 '체스티' 풀러 중장,(1898.07.26 ~ 1971.10.11)





Tan Beige 색상의 모델, 위 사진은 외피와 내피를 결합된 상태. 아래 사진은 분리한 사진.

에스피오나지의 CHESTY M-1947 Parka입니다. "Chesty"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인물인 Lewis Burwell "Chesty" Puller 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미 해병대 역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군인으로 장진호 전투 당시에는 해병 1연대를 이끌고 하갈우리 남쪽을 책임지고 있던 루이스 풀러는 당시 중공군의 포위와 함께 거센 공격에 맞닥뜨렸을 당시 했던 말은 미 해병의 명언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적을 찾고 있었다. 우리는 마침내 적을 발견했다. 간단하다. 이제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이제 모든 방향으로 싸우면 된다."






RIMALOFT® SILVER INSULATION 이 보온재로 사용되었다.

제품은 오리지널의 외형을 모티브로 하여 에스피오나지의 무드에 맞게 재해석하였고, 기능적으로는 활용성과 보온성에 초점을 맞춘 제품입니다. 특히 위 글에서 오리지널 M-47의 라이너가 알파카와 울 소재를 사용하여 기존 모피를 활용한 아우터에 비해 많이 가벼워졌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무게가 여전히 상당합니다. (두꺼운 카페트를 입고 있는 느낌입니다.) 에스피오나지는 라이너의 충전재를 가벼운 중량 대비 높은 보온성이 특징인 프리마 로프트로 대체, 활용하여 쾌적한 착용감과 보온성을 자랑합니다. 보온재는 후드에도 동일하게 충전되어 있습니다.






특히 아우터의 메인 원단인 Army-Cord Cloth(아미코드 클로스)는 미국산 면화(Cotton USA)를 활용하여 최초 기획부터 발주 제직, 가공, 염색까지 모두 자사 연구를 통해 탄생시킨 원단입니다. 과거 미육군에게 보급된 군복의 원단을 분석한 뒤 높은 퀄리티의 블렌딩 원사를 활용하여 고밀도의 원단을 제직하였고, 그리하여 과거 Army-Cord Cloth의 후도감과 고시감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었습니다.

내피의 메인 원단은 이번 시즌 새롭게 제직한 고밀도 61g/yd(15D)의 중량감을 지닌 Nylon 원단으로 발수가공, 풀덜가공, 다운프루프, PU를 모두 진행하여 높은 내구성과 활동성을 보장하며 착용시 부드러운 터칭감 또한 큰 장점인 원단입니다.




오리지널에서도 버튼으로 내,외피를 연결했듯이, 에스피오나지의 제품에서는 YKK社의 Permax Snap을 활용하여 연결시켰으며 소매의 끝자락의 경우에도 오리지널과 같은 - 내피와 외피의 유동성을 막기 위해 - 스냅과 웨빙밴드를 이용해 착탈 시킬 수 있게 했습니다. 체스트 포켓은 상단의 플랩과 안쪽면 모두 코듀로이로 커버하여 터칭감과 보온성을 높혔습니다. 오리지널에서 볼수 있었던 패스너인 재치벨트와 웨빙은 아우터 메인 원단과 동일한 스트랩으로 제작하여 묶었을 때와 풀었을 때 모두 자연스로운 실루엣을 연출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였습니다.






얇은 아우터와의 레이어링을 감안하여 여유로운 오버핏의 디자인을 적용하였고, 환절기에는 내피를 분리하여 내피 혹은 외피를 단독으로도 활용할 수 있으며, 겨울철에는 내피와 함께 사용하여 봄,가을,겨울 3계절 활용도가 높은 매력적인 제품입니다.




해당 제품은 2018년 11월 14일 수요일, 에스피오나지 오피셜 온라인 스토어 웨얼하우스를 통해 발매 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에스피오나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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