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DUKE KAHANAMO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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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의 아버지 '듀크 카하나모우'에 대한 모든 것



by Espionage Editor Team

2017 06 02 FRI





안녕하세요 에스피오나지입니다. 6월 초이지만 30도에 가까운 대낮 기온으로, 어느덧 여름이 성큼 다가와 있음을 느낍니다. 에스피오나지의 여름 컬렉션도 어느덧 다섯 번째 딜리버리입니다. 특히 이번 온기적절 다섯번째 딜리버리 상품군을 통해 여름이 가까워졌음을 느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중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지는 헬로 하와이 티셔츠(Hello Hawaii T-Shirt)







헬로 하와이 티셔츠에 나염으로 프린트된 이미지는 와이키키 쿠히오 비치에 위치한 한 동상(銅像)으로, 이 동상의 주인공은 바로 서핑의 아버지라 불리는 듀크 카하나모쿠(Duke Kahanamoku)입니다. 오늘은 와이키키 쿠히오 비치에서 두 팔을 벌려 만인을 환영하고 있는 이 듀크 카하나모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듀크 카하나모쿠는 1890년 8월 24일 오하우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이름에서 '듀크'는 1869년 하와이를 방문한 영국 왕자 에든버러 '듀크' 알프레드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듀크는 순수 하와이안 혈통 부모님 아래 자라왔습니다. 어릴 적 듀크에게 그의 어머니는 "바다를 두려워하지 말고, 가능한 멀리까지 도전해보아라"라고 가르치며 키워왔다고 전해집니다. 와이키키에서 수영과 서핑을 하며 성장한 듀크는 고등학교 중퇴 후 친구들과 함께 와이키키 비치 보이가 되어 생활을 이어갑니다.







그의 나이 20세 때, 호놀룰루 항구에서 열린 아마추어 경기 대회에서 참가하게 됩니다. 바로 이 경기에서부터 듀크의 전설이 시작됩니다. 이 대회 자유형 100야드 종목에서 세계 신기록을 4.6초나 앞당기는 경이로운 실력을 선보입니다. 추가로 220야드와 50야드 종목에서도 각각 세계 기록을 경신합니다.







이 대회로 인해 그다음 해인 1912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 미국 대표로 발탁되어 참가하게 됩니다. 미국 대표 수영선수 중 유일한 하와이안이었던 듀크는 200미터 자유형 부분 예선전부터 세계 기록을 경신하며 금메달과 은메달을 차지합니다.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두개. 그리고 4년 뒤인 1924년에 참가한 파리 올림픽에서는 아쉽게 100미터 자유형 부분 준우승에 그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당시 34세라는 그의 나이를 생각해보았을 때 대단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메달은 그의 동생 사무엘이 차지했습니다.) 이러하듯 듀크는 언 12년간 세계 무대에서 하와이 출신 워터맨으로서 하와이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기 시작합니다.







수영선수 생활 은퇴 후 듀크는 수영과 서핑의 부흥을 위한 노력과 함께 할리우드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합니다. 듀크는 할리우드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았는데 대부분 역할의 직함은 추장이었다고 합니다. 폴리네시안 추장, 아즈텍 추장, 인디언 추장 등등.







1925년 캘리포니아 뉴포트 비치에서는 요트가 전복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당시 신인배우 생활을 즐기던 듀크는 배우 동료들과 근처 해변에서 때마침 캠핑 중이었습니다. 듀크는 자신의 서핑보드를 들고 구출에 나섰고 여기서 혼자 8명을 구출해 내며 영웅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러던 중 1932년 갑작스레 수구(Water Polo) 종목의 도전을 선언합니다. 그의 나이 42세. 이때 당시 듀크가 남긴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40세가 되면 조금씩 행동이 느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수구선수로 전향한 것입니다." 1934년에는 호놀룰루에 방문한 당시 미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맞이하기 위해, 직접 과거 하와이 왕조였던 카메하메하 왕의 복장을 하고 카누를 이끌고 갑니다. 그리고 루스벨트의 아들에게 노 젓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듀크는 명예나 재산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1950년 후반부터 서핑 장비와 서핑 팀 혹은 서핑대회 등에서 그의 이름을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수입을 얻습니다. 어느 한 대회 프로모터에게는 서핑보드 거치대가 달린 롤스로이스를 선물 받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 후 듀크는 최초로 서핑 명예의 전당과 수영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영예를 차지합니다. 하와이 최초 친선대로서 1966년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훌라춤을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1968년 1월 23일 와이키키의 한 선착장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듀크는 인근 카이져 파운데이션 병원에서 사망합니다. 그의 나이 77세. 2013년 듀크를 다룬 영화 "더 라이드"가 제작이 되었고, 1990년에는 헬로 하와이 티셔츠의 주인공인 동상이 설치됩니다. 2015년 8월 24일, 그의 탄생 125주년 기념하며 구글 로고 마크로 등장하며 다시 한번 전 세계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가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하와이인들에게 듀크는 단순한 수영선수, 서핑 선수, 배우가 아닌 그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다시 시간을 더 뒤로 돌려보면, 하와이에 미국인들이 처음 발을 들인 것은 1874년이었습니다. 미국인들은 당시 국왕이었던 칼라카우와 왕을 협박하여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취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무력한 칼라카우와 왕은 샌프란시스코 객지에서 사망하였고, 그 후 왕위를 이어받은 사람은 여동생 릴리우오칼리니 여왕입니다. 여왕은 미국인들의 경제적 이익을 제한하고 주권을 강화하려하지만, 미국인들의 쿠데타로 인해 궁전에 감금되고 실각됩니다. 이후 1898년에는 하와이제도는 미국 영토로 편입되며 미국 국기의 50번째 별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때는 듀크의 유년시절과도 겹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함께 당시 위대한 선수였던 듀크에 대한 차별도 몇몇 남겨진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12년 엄청난 등장이었던 그를 한 미국인 기자는 이렇게 묘사했었습니다. "듀크는 항구에 입항한 증기선에서 던져진 은화를 찾기 위해 상어가 우글거리는 바다를 헤어치는 벌겨벗겨진 아이 같았다." 이러한 역사와 편견에 대항하여 듀크가 보여준 활약은 분명 하와이안들에게는 엄청난 자긍심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와이에는 과거부터 내려오는 예언이 있습니다. 과거 하와이 왕족의 카메하메하 왕이 남긴 말로 하와이의 순수 혈통 원주민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 한 인물이 나타나 그들에게 명예를 안겨줄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예언의 주인공은 듀크 카하나모우이지 않을까요.




@ Hello Hawaii T-Shi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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